학생 C는 (주)멘토의 서초 학습관에서 가장 성실하다고 손꼽히는 학생이다. 그는 지난 8월부터 서초 학습관에서 멘토링을 받고 있는데, 볼수록 기특할 뿐더러 성인인 멘토들로서도 배울 점이 많은 인격의 소유자다. 때로는 고등학생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순수한 마음씨를 내비치기도 하는 그는 기본적으로 성품이 선량하고 예의가 바르며 주어진 일에 성실하다. 심지어 학생 C를 담당하여 직접 지도하지 않고 간혹 곁에서 볼 일이 있는 정도의 멘토들마저 때때로 그를 칭찬할 정도다. 여러 의미에서 모범적인 학생, 모범적인 인간이다.

다만 학생 C는 공부를 못한다. 그가 공부를 못한다 함은 두 가지 의미에서 그러하다. 첫째, 그는 공부라는 행위 자체에 익숙하지 못하다. 예컨대 수학 공부를 할 때면 개념서의 설명 부분을 우직하게 손으로 베끼며 그대로 암기하려 하고, 그나마 그렇게 기껏 외운 것조차 금세 잊는다. 썩 어렵다고는 못할 상당수 수학 문제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둘째, 그는 공부의 성과를 평가하는 시험들에서 대개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지금까지 학생 C가 받아본 모의고사 성적표에서 가장 높은 등급의 수는 3이었다. 혹자는 3등급이라고 하면 꼭 공부를 못한다고 할 것까지는 없지 않느냐고 말하겠으나, 구태여 받아본 가장 높은 등급이 3등급이라고 언급하는 것은 다른 내용을 함축한다. 학생 C는 모의고사에서 5등급 아래의 등급을 받아본 적도 연거푸 있고,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는 편인 고등학교에 다니는 까닭에 그의 내신 성적은 모의고사 성적보다 낮다.

학생들은 발전할 수 있기에, 학생 C의 상황이 언제까지나 위와 같이 머물러 있으리라는 것은 아니다(실제로 학생 C는 지난 3월 모의고사에서 작년 모의고사에 비해 3개 과목의 등급이 올랐으며 등급이 떨어진 과목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멘토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나오고는 한다. 학생 C가 지금 우리를 찾아준 것만으로도 다행이긴 하지만 그가 중학생, 초등학생일 때부터 만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쉽다고 말이다.

학생 C를 처음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즈음 두 사람의 멘토가 학생 상담과 지도를 겸하여 학생 C의 집을 찾은 적이 있다. 두 멘토는 그의 집에 각각 방문했으되 같은 이유로 충격을 받았다. 학생 C가 주로 공부하는 방의 책장 때문이었다. 학생 C에게는 형제나 자매가 없는데, 초등학생 혹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연령대의 아동에게 적합한 그림책들이 숱하게 꽂혀 있었던 것이다.

학생 C와 그의 부모로부터 듣기로 문제의 그림책들은 어린 시절 학생 C의 어머니가 그에게 읽어주던 것이지 고등학생인 지금도 읽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멘토 한 명은 그 책들을 당장 버리라고 종용할 정도로 다소 격하게 반응했다.

책장에 그림책들이 꽂혀 있는 일이 그 자체로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이러저러한 단서들을 붙인다면 고등학생이 여전히 그림책 읽기를 즐긴다고 한들 딱히 문제적인 상황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학생 C의 집에서 그림책이 많은 책장을 목격한 일 전후에 멘토들이 학생 C를 관찰한 바를 고려한다면, 문제의 책장은 현재 학생 C가 겪고 있는 어려움들의 근원을 드러내는 징후로서 기능하게 된다.

학생 C는 영어 수업 중 이런 질문을 했다. “선생님, ‘물이 새다’와 ‘물이 흐르다’는 뭐가 달라요?” 당시 학생 C를 지도하고 있었던 멘토는 그저 아연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을 따름이었다고 한다.

부연하자면, 학생 C는 유년기부터 한국어와 K어에 이중노출되었다. 어려서 K어에 노출되었기에 학생 C가 한국어를 못한다고 쓰고 싶지는 않다. 이중언어 환경에서 성장하여 두 언어 모두를 얼마든지 자유롭고 유려하게 구사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학생 C는 K어로 회화는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결코 한국어보다 K어로 독해와 작문을 잘하지 못한다. 달리 말해 학생 C가 K국에서의 중등교육 및 고등교육을 한국에서의 교육보다 더 수월하게 따라갈 수 있다고 하기 어렵다.

즉, 학생 C가 ‘물이 새다’와 ‘물이 흐르다’의 차이를 모르는 것과 관련하여 K어에 책임을 묻지는 못한다. K어에 비해 한국어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학생 C의 전반적인 언어사고 능력이 미발달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와 관련된 다른 예시를 든다면, 학생 C는 또 국어 수업 중에는 “녀던 길 알패 잇거든 아니 녀고 엇뎔고”로 끝나는 퇴계 이황의 시조가 “의지적”이라는 설명에 관해 이 “의지적”이라는 말이 어딘가에 기댄다는 뜻인 ‘의지依支’와 상통하는 의미인 줄 안다고 했다.

백번 양보해서, 한자어를 한글로만 쓸 때 그것이 여러 동음이의어 중 무엇에 해당하는지, 이 ‘의지’가 意志인지 依支인지 분명히 파악하지 못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멘토들이 기대하는 수준의 언어사고 능력이 학생 C에게 있었더라면 자칫 이황의 시조가 “의지적”이라는 것이 ‘무언가에 의지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뜻으로 이해했다고 한들 바로 다음 순간에 자신의 이해가 틀렸음을 알아차리거나 혹은 자신이 미처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었는지 질문할 생각을 해야 했다. 문제의 시조를 ‘의지적依支的’이라고 해석한다면 이를 위해 선결되어야 하는 전제들이 있는 것에 더해 “의지적”이라는 말이 언급되기 전까지 수업의 맥락도 돌연 끊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학생 C는 자신이 이해한 바 “의지적”이 ‘의지적依支的’이라고 하면서 이러한 이해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낌새도 채지 못했다.

위에서 언급한 학생 C의 미성숙한 언어사고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 다름아닌 그림책이 가득한 책장이다. 책장은 한 사람이 그간 읽은 책과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보여주는 바, 학생 C가 지금 그림책을 읽고 있는 것은 아니고 어려서 읽었다는 것은 뒤집어 말해 그림책을 읽던 때 이후 그의 독서량이 지극히 부족하다는 의미이다. 그림책을 읽을 시기가 지나면 자연히 새로운 책들을 읽어야 하고 새로운 책들은 읽기 위해서는 책장에서 그림책들은 치워지고 새로운 책들이 꽂혔어야 하는데,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대학 입시까지의 교육, 나아가 성인이 된 이후의 학습에 있어서도 언어로 주어지지 않는 정보는 실질적으로 전무하다. 언어를 구사하는 일에 장애가 있으면 공부가 힘들 수밖에 없다. 학생 C는 초등학생 정도의 나이부터 충분한 언어사고 능력을 배양할 기회를 놓쳤기에, 비록 고등학생이 된 지금 그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한다고 한들 노력 대비 성과가 크지 않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물이 새다’와 ‘물이 흐르다’의 차이를 알지 못하고, “의지적”이라는 말이 意志와 依支 가운데 어디에 해당하는지 스스로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학생 C로서는 고등학교 교과서를 읽는 일만 해도 만만치 않은 도전일 터이다.

학생 C의 사례를 꺼내본 까닭은 이것이 학생 C에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영어 시험지를 국어로 번역해줘도 숱한 문제를 틀리는 학생들이 수두룩하다. 영어 실력이 문제가 아니다. 또 사회탐구 과목을 아무리 암기해도 돌아서면 까먹는 학생들이 지천이다. 역시나 사회탐구 실력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이해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무작정 외우려 한 탓이다. 글을 읽고, 분석하고, 제힘으로 정리하며 소화하는 언어사고 능력의 부족 탓이다.

고로 아직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라면 지금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독서다. 그것도 양질의, 텍스트의 구조가 치밀하고 정보의 밀도가 높은 도서들을 읽어야 한다. 당장의 학교 공부와 상관 없는 일에 시간을 쏟는 것 같지만 그것은 근시안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 읽은 책 덕분에 내일의, 내달의, 내년의 공부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반면 언어사고 능력이 얼마간 부족한 고등학생은 어쩌면 좋을까? 안전에 수능이 닥쳤으니 무턱대고 독서를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능에 연계되는 문학 작품들, 비문학 지문들이 언어사고 능력을 기르기에 굉장히 훌륭한 텍스트기 때문이다. 끝없이 이들을 읽고, 노트에 구조도를 그리고, 논리 전개를 파악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충실한 연습이 보장된다면 국어 성적뿐 아니라 다른 과목의 성적도 오르기 시작할 것임을 장담한다.

(주)멘토의 멘토들은 학생 C에게 무엇보다 국어 공부를 시키는 것에 주력해 왔고, 학생 C의 모의고사 성적은 드디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국어 성적의 향상에 다른 과목에서의 성적 향상도 뒤따를 것이다. 비단 학생 C가 아니더라도 (주)멘토의 멘토들이 국어 지문 노트 정리법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수능 공부가 어려운가? 국어부터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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