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령이 한국을 배회하고 있다. 공부법 쇼핑이라는 유령이."

많은 학생들을 보며 느끼는 소회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위와 같습니다.

 

'공부법'이라는 단어, 정말 매력적입니다. 공부에 대한 노하우라니, 좋은 공부법 하나만 있으면 쉬이 성적을 올리고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또 이런 말도 있습니다. "나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말도 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 실로 공부법도 중요하고, 나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는 일도 중요하며, 공부를 위한 동기를 얻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건, 일단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맞는 공부법도, 동기 부여도 모두 공부를 잘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공부법의 중요성, 동기 부여의 중요성이 부각된 나머지 많은 학생들과 부모님들은 본말이 전도된 행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공부법과 동기 부여를 쇼핑하듯 이리저리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학원에 등록해서 한두 달을 다니다가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다고 판단하면, 학원을 그만두며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 아이)와는 공부법이 맞지 않는 거 같아요.'

그러나 대다수 SKY 출신 멘토들이 공증하듯, 최고의 공부법은 묵묵하게 자리를 지키며 공부하는 것입니다. 최상위권은 요란하지 않습니다. 어떤 공부법이 좋을지 우왕좌왕하거나 좌고우면하지 않습니다. 여기저기 학원을 옮겨 다니며, '나에게 맞는 공부법은 뭘까?' 같은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쇼핑하듯 학원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뺐다를 거듭하지 않습니다. 한때 시대를 풍미한 영화배우이자 절권도의 창시자이기도 한 이소룡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 있습니다. "나는 만 가지의 발차기를 찰 수 있는 사람은 두렵지 않다. 다만, 한 발차기를 만 번 연습한 사람이라면 두렵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만 가지의 공부법을 알고 있는 학생보다, 한 가지 공부법으로 1만 시간을 공부하는 학생이 더 집요하고 무서운 학생입니다.

하나의 공부 방법이 자기랑 잘 맞는지 안 맞는지, 좋은 방법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그토록 긴 기간 공부하는 일이 무모하고 미련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완벽한 공부법 같은 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찾아 나서려 요란을 피우며 종횡무진할 필요도 없습니다. 대신, 완벽하지 않은 학생이 완벽하지 않은 공부법으로 긴 시간 꾸준히 공부함으로써, 학생은 조금 더 완벽에 다가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꾸준히 공부하는 최상위권 학생들은 고독하고 고고하게 책상 앞에 앉아, 이 세상의 선배들이 남긴 유산을 깊이 음미합니다. 언어라는, 수학이라는, 역사라는, 자연과학이라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이라는 유산을. 이렇게 꾸준함의 덕목을 갖춘 학생들은 자연히 겸손한 태도와 겸허한 자세를 갖추게 됩니다. 공부란 본질적으로 시험을 잘 보고 점수를 잘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학생이 그 무렵 나이에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자기 삶을 돌보는 과정입니다. 자기 자신의 삶을 돌볼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늘 응시하고 있으므로, 기고만장해지지 어렵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최상위권 학생들의 안광(眼光)에는 높은 학구열과 함께 겸손함이 묻어납니다. 1등급을 받더라도 그들은 기고만장하지 않습니다. 언어, 수학, 과학, 사회 등의 학문에 대한 진정한 이해 없이도 받을 수 있는 게 1등급이니까요. 그들에게 공부를 하고 지식과 지혜를 쌓는 일은 당연히 해야 할 하루의 일과입니다. 새삼스럽게 '공부는 왜 해야 해요?'라고 묻지 않고, 그저 묵묵히 책상 앞에 앉아 자기가 해야 할 책무를 수행합니다. 이런 최상위권 학생들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 정신의 단단한 심지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말하자면 정신의 척추 기립근인 것이지요.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김영민 교수는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산문집에서 공부의 기대 효과는 정신의 척추기립근을 세우는 일이라는 취지의 언명을 한 바 있습니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목적이 있든 없든, 쓸모가 있든 없든 뭔가에 천착하고 꾸준한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 공부라고 말한다면, 그 과정에서 몸의 자세는 굽어질지언정 정신이 올곧게 바로 서게 됩니다. 이 정신의 척추 기립근을 단단하게 세우는 일, 요란하고 부산스럽게 삶을 재단하는 것들로부터 해방되는 일이 공부의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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