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대 의류학과 멘토 한수혁입니다. 멘토링을 비롯해 스무 명 남짓의 학생들을 만나왔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글에서는 제가 생각하는 멘토링의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합니다.

 

 저는 항상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고민합니다. 그렇다고 삶의 비전이나 로드맵을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짜두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삶이란?’하는 막연한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제게 지도받는 학생이 좋은 삶을 살 수 있게끔 노력하는 편에 가깝습니다. 제가 나름대로 결론내린 좋은 삶, 사람다운 삶이란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절대 알 수 없는 이유는, 우리는 단 한 번의 삶을 사는 것으로는 전생의 삶과 비교할 수도 없고 앞으로도 완벽하게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제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인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한 구절입니다. 이 구절이 전하는 대로, 우리는 단 한 번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항상 완벽한 선택을 할 수는 없고, 장고 끝에 악수를 둘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와 삶을 고민하는 건 인간만이 가진 특권이자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인간에 대한 제 진지한 장광설을 이야기한 것은, 공부의 필요성을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공부는 단지 잘먹고 잘 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대학 입시를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공부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생각하며 사는 것일진대, 공부야말로 이 ‘생각’의 능력을 키우기 위한 최선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대학 입시 결과나 당장의 성적은 오히려 부차적인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학생을 지도함에 있어서도, 당장의 성적보다도 학생이 삶에 갖는 태도를 바꿔 놓으려 노력해왔습니다. 근본적인 삶의 태도가 변하지 않으면 성적도 변하지 않는다고, 조심스럽게 단언하겠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학원을 옮기고 인강을 바꿔도 성적이 변하지 않는 것도 바로 여기에 그 까닭이 있습니다. 아이를 둘러싼 껍데기만 바뀌었을 뿐, 정작 알맹이인 아이 자체는 전혀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닥에서부터 올라왔기에, 누구보다도 학생의 입장을 이해합니다.

 

 서울대에서 학우들과 이야기해보면, 상당수는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못 해본 경험이 없습니다. 자조적으로 ‘나는 공부 못 했어’ 라고 말하는 학우들도, 면밀히 들어보면 전교 10등 내외일 정도이니, 그 기준은 너무나도 상향 평준화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정작 중하위권 학생들을 지도하면서도 아이의 심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를 숱하게 보았습니다.
 저는 중학생 때까지는 공부를 똑바로 해본 적이 없었고,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수학 시험에서 반 31명 중 30등을 했을 정도로 성적이 바닥이었습니다. 물론 학창시절 공부를 못 해본 경험이 학생을 가르치는 역량과는 별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학생에 대한 공감의 역량은 누구보다 뛰어나다는 자신이 있습니다. 저는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성장으로 이끌어 냅니다.
  
 자기주도학습을 통해 공부를 좋아하게 되고, 성적 향상으로 이어집니다.

 

 농담으로도 ‘공부 잘 한다’는 말과는 거리가 멀었던 제가 몇 년 사이 달라질 수 있었던 배경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절대적인 자기주도학습 양을 늘렸습니다. 둘째, 복습의 중요성을 절감했습니다. 
 자기주도학습 양을 늘렸다는 것이 단지 자기주도학습 시간을 늘렸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양질의 공부량을 늘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같은 시간을 앉아 있더라도, 그 시간의 밀도는 다르기 마련입니다. 같은 시간을 들여 같은 문제집을 푼다고 하더라도, 풀어낸 문제의 양과 성취도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공부의 역량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자기주도학습 양을 늘린다는 것은, 공부의 역량을 늘린다는 것과 진배없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무작정일지라도 자기주도학습 시간을 늘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도 다름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전에 공부를 계획적으로 해본 적이 없으니 방향성을 설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어떻게든 공부 시간을 늘려보자고 다짐하고, 가장 부족했던 과목인 영어부터 하루 4~6시간씩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영어만 붙잡고 공부할 수는 없으니 과목별 균형을 맞춰보자는 생각으로 수학, 국어, 탐구도 균형적으로 시간을 분배했고, 점차 공부법에 대한 이해도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공부의 역량이 커져가고 있던 것입니다. 
 공부에 대한 제 생각도 고등학교 2학년 무렵에 변하게 되었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고1 때까지는 한 번도 공부에서 재미를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그 동기가 무엇이 되었든 어떻게든 학습 시간을 늘리니, 학습 성취도가 따라왔고 점차 재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렇게 생각합니다. 공부가 재미 없다는 이유로 싫은 학생들은, 재미를 느낄 정도의 양의 공부를 해 본적이 없는 것이라고. 먼저 자기가 공부를 열심히 해 본적이 있는지를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일단 하다 보면, 자연스레 좋아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고득점자들의 비결은, 즉각적인 복습입니다.

 

 공부에 있어 자기주도학습의 확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그 중에서도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이 기본기가 갖추어졌다면, 고득점으로 올라가기 위한 준비가 된 것입니다.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은 누가누가 더 선행을 나갔다더라 하는 이야기로 예습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 주변을 비롯해 서울대에서 마주치는 진짜 고득점자들은 복습의 중요성을 훨씬 강조하곤 합니다. 저보다 예습을 한참 먼저 나간 친구들과 비해서, 학기가 시작되고 시험을 보면 제가 더 우위에 설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철저한 복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대치동에서 1년 정도 학원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흔히들 대치동을 교육의 메카라고 생각하지만, 제게는 그렇게 극적인 성적의 변화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제 평소 실력대로의 성적이 나왔고, 오히려 실력이 떨어진다는 감각도 들었습니다. 결국은 돌고 돌아 복습이었습니다. 그래서 학원 수업이 밤 10시쯤 끝나면 2시간 정도 스터디카페에서 복습을 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즉각적으로 복습을 하는 시간을 가지니, 수업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지고 다음 수업시간에 들어갔을 때 이전 시간 내용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학생이 놓치기 쉬운 맹점을 함께 짚어갑니다.

 

 아마 다들 그렇겠지만 10대 시절을 돌이키면, 참 사고와 시야가 좁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근시안적이고 얕은 비전으로 당장 눈 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급급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문제에서 한 발짝 여유를 갖고 떨어져 생각해 보면, 진정 노력해야 하는 중요한 영역은 따로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은, 수험생활이 주는 조급함에 바로 그 중요한 영역을 놓치게 될 공산이 큽니다. 그래서 자꾸만 노력에 배신당하는 달갑지 않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는 곧 슬럼프로 이어지고, 아이의 자존감에 상처를 주게 될 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데의 맹점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일입니다. 가령 학생들은 입결에 따라 학과와 대학 사이에 갈등을 하곤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들 학과보다는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근시안적인 맹점으로 말미암은 선택이, 앞으로의 몇 년에 걸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저는 제 전공인 의류학과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조언합니다. 간혹 서울대라는 이름만 보고 의류학과에 지원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좋은 선택은 아닙니다. 이 전공은 옷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권하고 싶은 전공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대학에 와서도 적응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단지 ‘서울대’ 라는 타이틀 하나만 가지고 관심도 없는 전공에 발을 담그는 것은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공부는 앞서 말했듯 사람답게 살기 위해, 나아가 행복하게 살기 위한 것인데, 대학의 이름이 그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실제로 옷에 관심이 있고, 의류학과에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이라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꾸준한 노력으로 학생과 멘토의 상호적 성장을 만들어갑니다.

 

 제가 20명이 넘는 학생들을 만나며 느끼는 것은, 아이들이 저로부터 배우는 것이 있듯 저도 학생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대학에 가고 나면,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고등학교 때 공부의 반의 반만 해도 과탑을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대학생활을 거치며, 그 말이 꼭 우스갯소리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그렇게 치열하고 처절하게 노력했던 나는 없고, 방황하는 20대의 청춘으로서의 나를 발견하면 쓴웃음을 짓게 됩니다. 그러다 지도하는 학생들이 열정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저의 생활을 다잡는 계기가 될 때도 있습니다. 학생은 저로부터 먼저 걸어간 이의 노력의 길을 보지만, 저는 학생으로부터 열정어린 패기를 봅니다. 이렇듯 멘토란 단지 학생의 방향을 제안하는 길잡이가 아닌, 상호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존재임을 느낍니다.
 보통 과외를 하거나 멘토링을 진행하면, 학부모님들도 그렇고 선생님들도 그렇고 ‘동기 부여’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저는 동기 부여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꾸준한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 순간의 카리스마로 학생을 휘어잡고,  멋진 말로 학생에게 평생 남을 한 마디를 말할 자신은 솔직히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이의 곁에서 꾸준히 이끌 자신은 있습니다. 꾸준한 노력이야말로 제가 걸어온 길이며, 또 앞으로도 크고 작은 일들과 함께 걸어갈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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