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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고1 모의고사가 끝났다. 중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처음으로 맞이한 모의고사이다. 많은 학생들은 모의고사가 시작된 아침, 국어 시험지를 받아본 순간부터 놀랐을 것이다. 지금까지 중학교 교과 과정에서 접해본 국어 시험지와 비교할 때 굉장히 길어지고 딱딱해진 지문들, 그리고 분석적인 문제와 선지를 보며 고등학교에서의 공부가 그리 만만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절감했을 것인 까닭이다.

 

특별히 이번 모의고사에서 국어 28-33번 중 틀린 문제가 있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정신분석이론과 분석심리학을 다룬 지문을 읽고 풀어야 했던 고1 국어 모의고사 28-33번은 중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이 통상적으로 지니고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상식의 선에서 굉장히 낯선 정보를 담고 있다. 그러니 분트, 프로이트, 융이라는 이름을 접하는 순간 상당수 학생들은 이 지문이 퍽 어렵게 느껴지고 미리감치 겁을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이과 성향이 강한 학생들의 경우 익숙하지 않은 광의의 인문학 지식을 제시하는 지문 앞에서 당혹스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솔직히 평가하건대, 28-33번 문제는 굉장히 쉬웠고 이에 딸린 지문도 쉬웠다. 직전의 문장은 28-33번 중 틀린 문제가 읽는 학생들로 하여금 절망하라는 의도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차라리 반대의 의도에서, 앞으로의 희망을 보여주겠다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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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다고 평가하는 까닭을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분트를 언급하는 4줄 정도 분량의 도입부를 제하면, 본문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과 융의 분석심리학 각각을 설명하고 양자의 입장을 대비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달리 말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과 융의 분석심리학을 대조하며 두 견해가 어떤 면에서 일치하고 어떤 면에서 다른지를 구조화할 수 있다면, 상세 정보를 직접적으로 묻는 문제와 변칙적인 문제를 제하면 해당 지문에 딸린 모든 문제는 풀린다.

 

3월 고1 국어 모의고사의 출제자는 우선 본문을 (가), (나)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 제시했다. 본문의 정보들을 어떻게 묶어 대조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것은 본디 수험생의 몫인데, 이를 출제자들이 미리 해준 것이다. 또 본문과 함께 실린 삽화는 본문에서 설명하는 바 각각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과 융의 분석심리학에 따른 정신세계를 도식화하고 있다. 본문 내용을 정리하여 이해하는 수고조차 덜어진 셈이다. 이것만으로도 문제들 중 28번, 30번, 31번의 난이도는 획기적으로 하락하고 29번과 32번도 비교적 손쉽게 풀린다. 게다가 33번의 경우에도 설령 각 단어의 의미를 사전에 정확히 모르고 있었던 상태였다고 한들, 본문 전반의 이해가 쉬워졌으므로 문맥상 개별 낱말의 뜻을 추정하기도 쉬워진 것은 당연지사이다.

 

달리 말해 23년도 3월 고1 모의고사에서 국어 영역 28-33번은 어떻게든 수험생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여 제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나마 고1 학생을 대상으로 한 모의고사였기에 이 정도의 친절함을 보일 수도 있는 것이고, 고3 모의고사, 나아가 수능에서는 이와 같은 배려심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다수의 학생들은 이 지문과 문제들을 마음 편히 풀어내지 못했을까? 단언하자면, 정신분석, 심리학, 프로이트, 융과 같은 말들 앞에서 긴장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차분한 태도로 글과 문제를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즉, 지레 괜한 두려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비단 국어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교과서 내용의 어려움은 체감상 급격히 상승한다. 익숙하지 않은 개념들, 편하지 않은 길이의 지문들이 등장한다. 그렇다고 해서 고등학교에서는 평범한 고등학생들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가르치는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평범한 고등학생들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기에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다.

 

희망은 언제나 가까이 있지만, 그 희망을 붙잡기 위해서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잠깐의 불편함을 감수할 용기, 낯선 정보를 받아들일 용기, 지금까지 접해본 적 없는 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애써볼 용기, 첫눈에 쉽지 않아 보이는 지문도 담담하고 대담하게 펜을 들고 읽기 시작할 용기 말이다.

 

3월 모의고사에서 28-33번 중 오답이 발생한 고1 학생이라면, 그 학생에게 부족한 것은 지능도 지식도 아니다. 대단한 지능과 지식이 없어도 얼마든지 풀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다만 부족한 것은 그의 태도에 있었다. 모르는 것이니까 스스로 읽고 소화해보겠다는 개방적 대담함을 발휘하기로 마음 먹을 때, 수험생의 성적은 빠르게 향상된다.

 

고1 3월 모의고사 성적은 수능까지 3년을 간다는 속설이 있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속설이다. 기존의 익숙한, 타율적인 공부습관을 그대로 붙잡고 있는다면 이 속설은 옳은 것으로 증명될 것이다. 하지만 수업 내용에서 분트보다, 프로이트보다, 융보다도 낯선 것이 나온다 할지라도 매순간 학생으로서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세로 임한다면, 그 수험생은 이 속설의 반례가 될 것이다.

 

낯설고 두렵다는 것은 안다. 앞으로 힘들지 않으리라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해야 한다. 오직 그런 담담한 대담성을 발휘할 때 수험생활은 성공적 결실을 맺는다. 지금의 고1 학생들이 겪었던 것을 그대로 겪었던 수없이 많은 멘토들이 보증할 수 있다. 고로 아래와 같은 짧은 말로 이 글을 맺는다.

 

괜히 겁먹지 말고, 지금부터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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