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이제 고등학생이 된 지 2주 정도 되었겠구나. 그 시절 나는 막연하게 두려운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나. 아무래도 고등학교는 대입을 위한 관문으로 여겨지는 분위기가 있고, 이미 주변에서 네게 고등학교 생활에 관해 많은 말을 해줬는지도 모르겠다. 그 말들이 네게는 조언으로도, 제안으로도, 때로는 경고나 협박으로 들렸을 거야. 그래서 네게 더 무슨 말을 한다는 것이 조심스럽기도 해.

 

하지만 그래도 네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돌이켜보면, 불안해하기만 하던 고등학교 1학년 3월의 나는 누군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바랐던 것 같거든.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할 말은 너보다 몇 년 앞서 고등학교 생활을 지나온 언니로서, 마음속에 꼭꼭 간직해왔던 이야기기도 해.

 
 

 

1. 성적이 학교생활의 행복을 좌우할 수도 있어.

 

첫마디부터 성적 이야기라니, 네 질색한 표정이 벌써 그려진다. 그런데 나는 ‘공부를 잘해야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대학을 가야 좋은 직장을 얻고, 좋은 직장을 얻어야…’ 같은 식의 뻔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야. 내 생각이지만, 많은 경우 뻔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는 지금과 동떨어진 이야기이기에 더욱 듣기 싫어지는 것 같아. 그래서 나는 네 미래가 아니라, 현재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지금 당장의 네가 행복하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어.

 

공부를 못하는 고등학생은 불행한 고등학생일까? 물론 꼭 그렇지는 않아. 그러나 이렇게 생각을 해보자. 너는 네 성적을 네 자존감과 어디까지 분리할 수 있니? 어떤 의미에서는 나도 아직 어려. 그래서 이렇게 속단하기는 조금 부끄럽지만, ‘얼굴이 예쁜/못생긴 나’, ‘친구가 많은/적은 나’, ‘운동을 잘하는/못하는 나’와 같은 자신에 대한 평가가 인생에 반드시 본질적인 것은 아닐지도 몰라. 그렇지만 너도 때로는 네 얼굴이 예쁘지 않다는, 네게 친구가 많지 않다는, 네가 운동을 잘하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속상했던 적이 분명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분명 머리로는 그런 이유로 불행할 까닭이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이야.

 

성적도 마찬가지야. 멘토로 활동하며 나는 여러 멘티를 만났어. 그리고 성적에 자신이 없어서 멘토를 찾아온 학생들은 어딘가 주눅 들어 있는 경우가 많더라. 다시 말하지만, 나는 오늘을 살고 있는 네가 행복하기를 바라. 맞아, 행복이 성적순은 아니지(너 혹시 이 대사가 나오는 영화 아니? 나한테도 거의 부모님 세대 영화일 것 같은데…). 그래도 좋은 성적이라는, 자존감의 한 가지 원천을 네가 더 가질 수 있다면 네가 행복해지는 일도 더 쉬워질 거야.

 

 

 

2. 어서 영어 단어 공부를 시작하자.

 

너무 감상적인 이야기였다고 느껴진다면, 이번에는 조금 더 실용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그리고 지금 당장의 이야기를 했으니 앞으로의 이야기도 한 번 해보자. 나는 네가 지금 단 한 가지만 공부할 수 있다면 영단어 공부를 하라고 권할 거야. 그나마 가까운 시점의 일을 다뤄보자면, 아무리 영어가 수능에서 절대평가화되었다지만 (새삼 너와 나의 나이 차이가 느껴진다) 일단 영어는 여전히 ‘국영수’에 속하는 주요 과목이잖니.

 

영어 과목이 중요하다는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영어는 문법이 중요하지 않냐고? 맞아, 중요하지 않은 게 어디 있겠냐마는 당연히 문법도 중요하지. 그런데 아직은 네가 체감하지 못했을 비밀을 말해줄게. 학교에서 가르치는 영어 문법은 중학교에서나 고등학교에서나 별로 다를 게 없어.

 

고등학교 영어에서 달라지는 건 영어 어휘의 폭과 텍스트의 난이도야. 앞으로는 중학교 영어 지문들보다 훨씬 더 다양한 단어들이 쓰이는 긴 지문을 자주 보게 될 거야. 수능에서 1등급을 받기 위해 숙지해야 하는 영단어 수는 대략 5500개라고 하더라. 나는 네가 지금 영어를 얼마나 잘하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통상적으로 중학교까지의 교과 과정에서 반드시 배우는 영단어는 1500개 정도라고 해. 즉, 네가 학교 수업을 그럭저럭 들어온 보통의 학생이라면 앞으로 너는 수능 영어 1등급을 받기 위해 4000개의 영단어를 더 숙지해야 한다는 말이지.

 

현실적으로 말해서, 고등학교 3학년 때 영단어를 암기하고 있기란 매우 어려워. 실질적으로는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칠 때까지의 2년 동안 4000단어를 공부해야 할 거야. 하루도 빠짐없이 영단어를 외우고, 외운 영단어는 절대로 까먹지 않는다고 가정해도 매일 대여섯 개의 새로운 영단어를 암기해야 한다는 뜻이지. 그러니 더더욱 영단어는 바로 지금 공부를 시작해야 해.

 

아 참, 까먹을 뻔했다. 나는 영단어에 관해서는 그것이 네 평생의 자산이 된다는 이야기도 해주고 싶었어. 모든 언어의 기초는 어휘이고, 구사할 수 있는 어휘의 폭이 넓을수록 네 영어 실력은 확장될 거야. 그리고 지금 네가 외우는 영단어는 고등학교를 떠난 이후에도 네게 남아 있겠지. 한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새로운 세계의 초대장을 받는 일이야. 나는 네가 한국어의 세계뿐 아니라 또 다른 세계에서도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좋겠어. 사족이지만, 대학에 가면 영어를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사용하게 될 거야. 믿기지 않는다면 지금 대학교에서 사용되는 교재들을 검색해서 그중 영어 원서가 몇 권이나 되는지 확인해봐도 좋아.

 

 

 

3. 지금은 국어, 영어 모의고사 준비를 해야 해.

 

네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치를 첫 모의고사가 3월 28일 목요일이지? 어쩌면 날짜도 몰랐을 정도로 무관심했는지도 모르겠구나. 어쨌든 모의고사는 그 자체로 대입에 반영되는 것도 아니니, 네가 공부에 관심이 있다고 한들 차라리 지금은 내신에 더 집중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벌써부터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하면 손에 잡히는 것이 별로 없을 거야.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기 시작한 것은 아마 저번주 정도부터였을 테고, 그 일주일 동안의 학교 수업을 모두 복습한다고 해도 네게는 시간이 남겠지. 하긴, 네가 한가한 덕분에 내 편지를 읽을 시간이 있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말이야.

 

그러면 이 한가한 시기에 뭘 하고 싶니? 그냥 놀래? 제풀에 찔릴 필요는 없어. 놀 수도 있지. 하지만 네가 내 편지를 여기까지 읽은 것만 봐도 너는 아마 그냥 놀기만 할 수는 없고 공부를 하긴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거야. 그렇지? 그런 너이기에 나는 3월 모의고사 준비를 하라는 말을 마음 편히 할 수 있는 거고.

 

모의고사 공부를 어떻게 하면 되냐고? (내가 왜 갑자기 이렇게 물음표로 끝나는 문장을 많이 쓰는지 모르겠다.) 간단해. 고1 모의고사 기출 문제들을 한 번 쭉 풀어봐. 지금은 문제들을 맞추고 틀리는 일에 일희일비하지는 말고, 첫 모의고사를 치르기 전 모의고사가 어떻게 나오는지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해.

 

나는 많은 고1 학생들이 3월 모의고사가 끝난 뒤 좌절하는 모습을 봤어. 자신이 예상했던 것에 비해 모의고사를 치르기가 어렵다고 느껴져서 위축되었기 때문이지. 물론 모의고사 문제들이 어려운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문제의 난이도보다 학생들의 경험이 부족한 탓이 더 크다고 생각해.

 

지금까지 중학교에서 치른 내신 시험은 대개 50분 동안 스무 개에서 서른 개 정도의 문제를 푸는 식이었지? 고등학교 모의고사에서 수학 과목은 30문제가 출제되고, 이 문제들을 100분 동안 풀어야 해. 그러니 고1 3월 모의고사에서 수학 시험 시간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긴 어려울 거야. 반면 국어는 45문제를 80분 동안, 영어는 45문제를 70분 동안 풀게 되지. 마킹이나 검토 등에 필요한 시간은 무시하더라도 한 문제의 답을 고민하는 데 쓸 시간이 2분도 되지 않아.

 

이러니 모의고사나 수능 문제를 풀 때 필요한 시간 운용 실력이 부족한 고1 학생들은 당황한 나머지 국어나 영어 시험에서 자기 실력보다 못한 성적을 받는 경우가 흔해. (누군가는 그것도 실력이라 하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이 학생에게 얼마나 도움이나 위로가 될지 나는 잘 모르겠다.) 뒤집어 말하자면, 당황하지만 않을 수 있다면 너는 만족스러운 성적으로 기분 좋게 수능으로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는 거야. 그러니 자, 편안한 마음으로 모의고사 국어 시험지와 영어 시험지를 풀어보자.

 

 

 

제법 긴 편지였지? 이렇게 긴 편지를 정성껏 읽어준 네게 고마워. 네가 들인 정성만큼 내 편지가 네게 도움이 되었기를 바랄 뿐이야. 편지를 마치기 전,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할게. 공부가 어렵고, 공부를 어떻게 할지 모르겠고, 공부만 생각하면 불안한 것은 절대로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오히려 솔직하게 자신의 모습을 인정할 때 사람은 더 나은 길을 찾기 시작할 수 있거든. 최소한 고1이었던 3월의 나는 그랬어.

 

나는 오늘 서울대 후문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산수유가 핀 것을 봤어. 노랗고 예쁜 꽃이지. 너도 어느 봄날, 이곳의 산수유가 얼마나 예쁜지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새롭게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한 너를 언제나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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