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학원가를 전전하는 부모님들은 한탄하듯 말합니다. 

 

“왜 아이에게 이만큼의 돈과 시간을 투자했는데 성적이 나오지 않죠?”

 

 비용을 지불한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타당한 지적입니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 들이는 비용을 ‘투자’라 여기고, 그에 걸맞는 ‘성과’로서 성적이 나와야 한다고들 생각합니다. 그러니 학원에 아이를 맡기고는 아이의 성적이 달라지지 않으면 학원 상담실에 방문해 따지듯 말합니다. 왜 아이의 성적이 나오지 않았냐고.

 학원의 입장에서도 어처구니 없을 것입니다. 학원 입장에서는 자기한테 주어진 ‘교습’이라는 행위를 충실하게 행했을 뿐입니다. 영어를 가르쳐 달라 하여 영어를 가르쳤고, 수학을 가르쳐 달라 하여 수학을 가르쳤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소화하는 것은 온전히 학생의 몫이었습니다. 그 내용을 소화하지 못한 것은 학생이고, 그 책임 또한 학생에게 있다고 생각해 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뜸 의뢰인이 찾아와 책임을 물으니, 답답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학원과 학부모님의 갈등은 항상 공격과 방어의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왜 성적이 안 나왔나요?’ ‘그쪽 아이가 공부를 안 해서요.’ 같은 형태의, 힐난과 책임회피의 형태로 대화가 진행됩니다. 그 결과, 학부모님들의 선택은 하나로 수렴하게 됩니다.

 

‘학원을 옮기자’

 

 그러나 정말 학원을 옮기는 것만이 능사였을까요? 다시 학원을 옮기는 결과를 되풀이하지는 않았나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가 불만을 호소하지는 않았나요? 우리 멘토들은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왔습니다. 멘토들이 머리를 맞대어 고민한 결과도 마찬가지로 하나로 수렴합니다. 

 

‘결국은 아이가 바뀌어야 한다’

 

 아이의 환경과 학원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환경을 조성하고 학원을 보내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아이를 바꾸기 위함일 것입니다. 아이가 하루 빨리 바뀌고 공부 태도와 성적에 극적인 변화가 생기는 것을 바랄 것입니다. 그러한 부모된 마음이, 오히려 조급하게 아이를 재촉하게 됩니다. 그러니 아이와의 말다툼은 일상이 되고, 학원 상담실에 찾아가 따지듯 묻습니다. 왜 아이에게 이만큼의 돈과 시간을 투자했는데 성적이 나오지 않느냐고.

 관점이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가 바뀌려면 스스로 바뀌어야 합니다. 햇님과 바람과 나그네가 나오는 유명한 우화를 다들 알고 계실 것입니다. 나그네의 두꺼운 외투를 벗긴 것은, 세찬 바람이 아닌 뜨거운 햇살이었습니다. 정확히는, 햇살에 더위를 느낀 나그네 자기 자신이었지요.  마찬가지로 아이가 바뀌는 데 있어서도, 스스로 바뀌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그 필요성은 어떻게 느끼게 할 수 있을까요? 크게 두 가지 감정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첫째, ‘이대로는 안 된다’ 하는 위기감. 둘째, ‘나는 할 수 있다’ 하는 자신감.

 우리 멘토들은 모두들 학창시절 공부라 하면 그 동네, 지역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정을 받았던 분들입니다. 위 두 가지 감정은 멘토들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이기도 한편, 학생들이 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여기 민기(가명) 학생이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인 이 학생은, 한 번도 학원의 요람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는 학생입니다. 으레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 아래에서 영어 유치원을 졸업했고, 초등학교 때에도 수학, 국어, 영어 학원을 다니곤 했습니다. 중학교에 가서도 하교 이후 학원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는 사실은 불 보듯 뻔합니다. 그런 민기가, 제대로 된 자기주도학습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하루였습니다.

 민기와 학부모님과 상담을 마치고, 저희가 제안한 것은 하나였습니다. 

 

‘하루라도 좋으니, 학원 없이 아이가 혼자 공부할 시간을 주세요’

 

 아이는 한 번도 ‘혼자서 공부한다’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공부란 누군가가 자꾸 옆에서 재촉해야 하는 것이고, 누군가가 자꾸 떠먹여줘야만 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애당초 경험을 해본 일이 없으니, 혼자 공부하면 무엇이 좋고 무엇이 어려운지에 대한 감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희는 가능성을 엿보았습니다. 경험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어떻게든 ‘할 수 있다’는 희미한 자신감이 민기의 얼굴에는 보였습니다. 오히려 혼자 공부하는 시간을 내심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아이 곁에서 지도 관찰만 할 뿐, 별다른 교습행위 없이 하루 종일 혼자 앉아서 공부하게끔 지도했습니다. 그런 경험은 민기의 인생에 있어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던 일일 것입니다. 당일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하루 종일 몰두해서 노력하는 경험. 성취의 달콤함과 책임을 모두 지는 경험. 이렇게 어른이 되어간다는 경험. 이런 경험들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의외로 경험해보면 ‘별 거 아니다’고 느낄 만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경험해볼 기회조차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이도 늦은 시각 펜을 내려놓으며 말했습니다.

 

 '오늘 되게 많이 공부했어요.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네요’

 

 장난삼아 툭 치며 시건방지다며 놀렸지만, 아이의 눈에서 어떤 확신과 자신감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공부구나’하는 확신. 그리고 ‘이렇게만 하면 전교 1등도 멀지 않겠구나’ 하는 자신감.  아이가 생각을 고쳐먹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 단 하루였습니다.

학부모님들은 아이의 교육에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들이곤 합니다. 그리고는 아이에게 ‘투자’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투자를 했으니 응당 결과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착각의 이유입니다. 특히 사업을 하시거나 본인의 커리어에서 성공가도를 달려오신 부모님들이 오히려 이런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성에 차지 않는 아이를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님과 아이의 갈등 상황은 일상이 됩니다.

 교육은 투자가 아닙니다. 교육은 아이가 자라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고, 조금 더디더라도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아이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겠다며 비용과 시간을 들이지만, 정작 아이에게 그런 ‘기회’들이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일지 고민해보지 않았을 공산이 큽니다. 그래서 민기 같은 아이들이 한 번도 혼자 공부할 ‘기회’ 조차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자꾸만 주어진 불필요한 ‘기회’들로 인하여. 

 저희는 다릅니다. 아이의 곁에서 아이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합니다. 불필요한 교습 행위나 과외를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를 바꾸어 냅니다. 아이가 진심으로 SKY 출신 멘토들을 닮고 싶게끔 만들기 때문입니다. 

 

‘요즘 민기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참 이뻐요’


실제로 어머님이 저희에게 남겨주신 한마디였습니다. 변화는 하루하루 쌓여가는 학습에서부터, 아이의 성품으로, 그리고 성적에서 드러납니다. 그리고 변모한 이후의 아이의 삶은 그 전과는 180도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이 극적인 변화의 길에서, 멘토들이 함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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