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과 멘토링을 진행한다는 것은, 주어진 매뉴얼과 프로그램을 시행한다는 것 이상의 함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진부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멘토링은 학생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일입니다. 아직은 미숙한 청소년기의 아이들에게 책임감과 성취감을 가르치고, 멋있는 어른으로 길러내는 것이야말로 멘토링을 통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거창하다면 거창하다고도 할 수 있는 이러한 목표 하에 있음에도, 많은 학생들과 부모님, 심지어는 선생님들까지도 단편적이고 근시안적인 잣대로 섣부른 판단을 하곤 합니다. 대표적으로는 아이의 시험 성적으로 ‘교육’의 성과를 따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이야기라고 넘어가기 이전에, 우리는 진지하게 재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언제부터 ‘교육’의 목표가 좋은 성적을 받게 하고,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되었을까요? 정말로 대한민국의 줄세우기식 입시 경쟁이 단지 좋은 성적만 받으면 그만인, 그런 질 낮은 교육의 소산인 것일까요?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입시 경쟁, 치열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대학,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아주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교육이 추구해야 할 것은 아이를 입시 경쟁에서 살아남게 만들고,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장차 사회의 구성원이 될 아이들에게, 사회의 규칙을 훈육하고 자기가 맡은 바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그에 대한 책임감을 길러주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스스로 해내고 자립할 수 있게끔 하는 것. 이것이 정말로 멘토링, ‘교육’이 추구해야 할 지상가치 아닐까 싶습니다.

전에 학습관 소식지에서 언급한 P학생이 여기 있습니다. 칼럼에서도 자주 언급한 학생이기도 합니다. 처음 이 학생은 멘토링에 굉장히 적대적이었습니다. PC방에서 게임하고 있는 학생을 잡아서 강제로 공부하게끔 하고, 옆에 멘토가 밀착해서 감시하는 것처럼 느꼈으니, 그 적대감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에게 꾸준히 관심을 주고, 해야 할 과제를 주고, 그 과제를 잘 수행했을 때는 칭찬을 하고, 그렇지 못했을 때에는 혼을 내기를 몇 개월을 반복했습니다. 이제 이 아이는 공부습관 멘토 선생님이 옆에 있지 않아도 학습관에서 가장 늦게까지 공부하고, 가장 긴 시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제 고등학교 2학년, 이과를 선택한 학생인 만큼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배워야 할 것이 많아지는 시기입니다. 학생은 실제로, “왜 이렇게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건지 모르겠다, 공부해야 할 게 너무 많다. 예전이 후회된다”고 말합니다. 솔직히 이 학생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 이 학생이 바로 성적이 오르고, 전교 1등이 되거나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소위 전교권 학생들이 전부터 공부해오던 누적치와 이제 공부에 시동을 건 학생의 공부 누적치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격차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게 뭐가 중요할까요? 학생에게 드러나는 ‘교육’의 성과의 지표가 단지 성적 일변도라면, 도대체 육아니 가정교육이니, 정서적 교감이니 하는 것은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흔히, 그리고 많이들 착각하는 것은 인간적인 성숙과 성적의 상승을 유리하여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암암리에 공교육은 인간적인 성숙을 책임지고, 사교육이 학생의 성적 상승을 책임진다고 생각합니다. 막말로 이 생각이 정말 사실이고, 성적과 입시 결과가 교육의 전부라면, 지금 당장 학교를 자퇴하고 기숙형 학원 등에서 입시 공부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또래 아이들과 상호작용하게끔 하는 것은, 학교가 줄 수 있는 인격적 성숙의 측면을 염두에 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희 생각은 다릅니다. 인간적인 성숙과 성적의 상승은 동시에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인격적인 성장을 통해 성적을 올릴 수 있게 되고, 반대로 성적이 오르는 경험을 통해 인격적인 성장을 얻어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공교육과 사교육을 막론하고 교육 시스템의 본질은 바로 인격적인 성숙에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을 국어사전에서 찾으면 다음과 같은 정의가 나옵니다.

“지식과 기술 따위를 가르쳐 인격을 길러줌”

위 정의에 따르면 교육의 요체는 지식이나 기술이 아닌, ‘인격의 성숙’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인격의 성숙, 이것은 어른으로서 아이를 대할 때 가장 어려운 것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보다 더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울 수도 있고, 사회적으로 더 높은 지위를 누릴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아이들에게 상대적으로 쉽게 전수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격의 문제는 다릅니다.

어른들 가운데서도 자기가 맡은 책무를 똑바로 다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고,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할 줄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불의를 보고도 그저 지나치기 부지기수고, 이익을 위해 정의롭지 못한 행동을 하는 어른들도 많습니다. 이런 행동들 하나하나가 인격을 기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방증이며, 하물며 교육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인격이 만들어내는 결과는 이처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이렇게 통제 불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만약 교육만으로 이 결과를 통제할 수 있었다면, 형법이나 감옥, 내지는 여러 제도적 처벌조항 등은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격을 성장시키기 위한 교육은 불가능한 것일까요? 애당초 위에 언급한 “교육”의 정의란 사실상 무의미한 것일까요?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록 교육만으로는 인격이 만들어내는 결과를 통제할 수는 없겠지만, 인격이 성장하기 위한 씨앗을 심고 싹이 트도록 보살필 수는 있습니다. 즉, 인격의 결과를 놓고 그것을 교정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인격이 성숙할 수 있는 시작점, 즉 실마리를 던져놓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어진 학교 공부에 충실하게끔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인격과 수험 공부를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니까 다들 명문대생이 도덕적으로 지탄받을만한 일을 했을 때, ‘공부만 잘하면 뭐하냐, 먼저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말합니다. 학교 공부만 하다가 인격 수양을 놓쳤다는 사실을 지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판의 목소리도 분명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 인격적인 결과물은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계층의 어느 집단에 들어가든, 인격적으로 미숙한 사람은 있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인격이 성장하기 위한 실마리, 그 시작점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게끔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상 대부분의 부모님들과 학원들은 아이에게 ‘공부해라, 공부해라’ 잔소리를 거듭하고, 책임 또한 아이 스스로 지게 하는 게 아니라 말로만 혼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상적인 학생이라면 말로 혼나는 것만으로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겠지만, 대다수의 학생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 일쑤입니다. 따라서 아이가 자기의 책무를 반드시 다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려면, 억지로라도 공부를 방해하는 것들로부터 멀어지게 해야 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앞서 이야기한 P학생의 경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컴퓨터 게임 LOL(League of Legend)에 빠져있던 아이를 처음에 PC방에 잡으러 가고, 라면이 아닌 제대로 된 밥을 사 먹이고, 공부습관 멘토 선생님들을 붙여 가며 공부하게끔 했습니다. 컴퓨터부터 시작해서 태블릿, 스마트폰까지, 게임에 관련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모든 전자기기를 압류했습니다. 당연히 반발이 심했고, 학생의 마음가짐 또한 ‘더럽고 치사해서 공부 해주지 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몇 달, 멘토 선생님들도 물심양면 고생해가며 아이 옆에 달라붙어서 공부하게끔 혼내고 어르고 달래기를 거듭하니, 어느 순간 아이 입에서 “LOL을 시작한 것을 후회한다”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짧은 한 마디였지만, ‘정신 차렸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아이는 공부습관 멘토 선생님이 안 계셔도, 학생들 중 가장 마지막까지 학습관에 남아서 공부를 하고 집에 들어갑니다.

이처럼 아이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성적을 잘 받게끔 하는 게 아니라, 인격을 변화시키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합니다. 그러려면 진심으로 아이를 대하며 때로는 엄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진심은 닿기 마련이고, 아이도 점차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희는, 멘토링은 프로그램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멘토링은 입력값을 넣으면 정해진 결과값이 나오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멘토링은 휴머니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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